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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택: 한국 테니스의 전설 알아보기

by tennis-love 2025. 3. 5.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 선수

 

 

 

2018 호주 오픈에서 정현 선수가 남자 단식에서 4강에 오르며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썼습니다. 정현 선수가 업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한국 테니스 선수하면 이형택 선수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많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한국 테니스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 테니스의 레전드인 이형택 선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이형택 선수의 기본 정보 및 선수 생활

이형택 선수는 1976년 1월 3일,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습니다. 9세에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고, 1995년 19세의 나이로 프로 전향을 했습니다. 오른손잡이에 한 손 백핸드를 구사하고, 하드 코트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개인 최고 랭킹은 2007년 8월에 기록한 세계 랭킹 36위이고, 2009년 10월 대회를 마지막으로 프로 선수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1995년 프로 전향 이후 1995년 4월에 서울에서 열린 'ATP 투어 KAL컵 코리아 오픈' 남자 단식에서 16강에 진출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1995년 5월에 국내 대회에 참여해서 첫 우승을 차지했고, 10월에 열린 '서울 챌린지 투어' 대회에서는 4강에 차지하며 세계 랭킹을 244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남자 단체전에 한국팀으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군면제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1999년까지 많은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랭킹 순위를 점차 올렸습니다.

2000년도부터 이형택 선수는 메이저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2000년 US 오픈에서 16강에 진출하며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던 이형택 선수는 2003년 1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ATP 투어 아디다스컵 인터내셔널' 남자 단식에 출전했습니다. 본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이형택 선수는 8강에서 당시 세계 랭킹 5위였던 우승후보 '마라트 사핀(Marat Safin)' 선수를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라트 사핀(Marat Safin)' 선수가 부상으로 기권을 하며 4강에 진출했습니다. 4강에서 세계 랭킹 41위인 '웨인 페레이라(Wayne Ferreira)' 선수를 만나 2-0으로 완파하며 처음으로 ATP 투어 결승에 올랐습니다. 결승에서는 당시 세계 랭킹 4위인 우승후보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Juan Carlos Ferrero)' 선수를 만나 먼저 1세트를 내주었지만 2세트와 3세트 모두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따내면서 세트스코어 2-1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역대 한국 선수 최초의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이고, 한국 테니스를 알리는 큰 성과였습니다.

2003년 2월에는 'ATP 투어 시벨 오픈'에 참가하여 단식에서는 아쉽게 16강에서 탈락했지만 복식에서 '블라디미르 볼치코프(Vladimir Voltchkov)' 선수와 짝을 이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25년 3월 기준 한국 남자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ATP 투어 복식 우승입니다.

이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남자 단식 은메달, 2007 US 오픈 16강 진출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메이저 대회 우승은 하지 못했습니다. 꾸준히 대회에 참가하며 챌린저 대회 우승도 차지했지만 2009년 무릎 부상의 여파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최악의 부진을 겪었습니다. 은퇴를 결심하고 2009 롤랑가로스, 윔블던 대회를 목표로 치료에 전념했으나 무릎 부상에 손목 통증까지 겹치면서 예선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2009년 7월 데이비스컵, 10월 챌린저 투어에 출전한 후 2009년 11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했습니다.

 

2. 이형택 선수 커리어 및 은퇴 이후 생활

개인 세계 최고 랭킹은 ATP 싱글 랭킹 36위(2007년 8월 6일), 복식 최고 세계 랭킹은 95위(2006년 1월 16)로 단식과 복식에서 모두 세계 랭킹 100위권 안에 들었습니다. 테니스의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업적을 만들어내며 한국 테니스의 전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1) 그랜드 슬램 최고 성적 : 2000, 2007 US 오픈 16강 진출

2) ATP 투어 : 2003 ATP 투어 시벨 오픈 우승

3) 챌린저 투어 : 우승 13회

 

이형택 선수는 2009년 11월 1일 은퇴식을 갖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테니스 유망주를 키우면서 코치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13년 5월 현역 복귀를 선언하며 코트로 돌아왔습니다. 단식경기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코치에 전념하면서 복식경기에 참여하여 1회전에서 톱시드 복식조를 꺾기도 했습니다.

이후 현역 생활을 이어가지 않으면서 테니스 해설과 방송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14년 '우리 동네 예체능' 테니스 편에 코치로 고정 출연했고, 2019년 '뭉쳐야 찬다'에 출연하여 방송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최근에는 테니스 관련 방송과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테니스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3. 이형택 선수에 대한 평가

테니스의 인기가 낮고 특출난 선수가 나오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 세계 랭킹이 40~100위를 유지했던 투어 중견급 선수였습니다. 꾸준히 해외 무대에서 뛰었다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겠지만 데이비스 컵, 아시안 게임, 올림픽 등 선수 커리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큰 대회에 참가하면서 랭킹 순위 관리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프로 전향 후 바로 해외 원중 투어를 다니지 못하고 대학 졸업 후 해외 원정을 다니기 시작해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5년 정도를 잃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수 생활을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커리어를 쌓고 은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형택 선수 이후에 5년 넘게 뒤를 이을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가 2015년 정현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이형택 선수 이후 처음으로 세계 랭킹 100위권 안으로 진입했고, 그랜드 슬램 대회를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정현 선수는 2018 호주 오픈에서 4강 진출을 이뤄냈습니다. 2021년에는 이형택 선수 이후 처음으로 권순우 선수가 ATP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4. 이형택 선수가 대한민국 테니스에 끼친 영향

이형택 선수의 가장 큰 유산은 그가 남긴 성적과 업적뿐만 아니라, 한국 테니스의 대중화에 기여한 점입니다. 그의 성공은 단순히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테니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세대의 테니스 선수들이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한국 테니스의 선구자로서, 후배들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의 중요성을 전파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형택 선수는 자신의 커리어 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모든 경험이 그를 더욱 강한 선수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불굴의 정신과 열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한국 스포츠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 한국 테니스의 전설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테니스 선수는 이형택 선수입니다. 선수 생활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테니스의 저변을 확대하고 대중화에 앞선 인물입니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대형 스타가 나왔을 때 인기가 상승하고 관심도가 높아집니다. 테니스의 관심을 조금 더 높일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테니스 스타가 탄생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