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입니다. 12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테니스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테니스는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테니스는 유럽 국가와 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테니스의 발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비교적 짧은 대한민국 테니스의 역사와 발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대한민국 테니스의 초기 역사
대한민국에서 제일 먼저 테니스가 진행되었던 곳은 거문도입니다. 제주도와 여수의 중간 지점에 있는 거문도는 어업에도 중요하고, 전략상 요충지 역할을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구한말 외세의 세력 다툼 때문에 1885년 영국군이 거문도를 불법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거문도 점령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불법 점령은 2년간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영국군은 불법 점령을 하면서 테니스를 치기 위해 거문도에 테니스장을 지었습니다. 이 테니스장은 '해밀턴 테니스장'으로 불립니다. 1885년 영국군이 거문도 주민들에게 보여주면서 지은 테니스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이기 때문에 한국 근대 스포츠 역사에서도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한동안 잊혔던 '해밀턴 테니스장'은 2019년 원위치로 추청 되는 곳에 복원을 한 후 현판을 세웠습니다. 1800년대 후반 테니스가 우리나라에서 진행이 되었지만 실제적으로 테니스 경기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 초반입니다. 1908년 4월 18일 탁지부(현 재경부) 관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구락부를 조직한 뒤 미창동에 테니스 코트를 마련해 경기를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테니스의 시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에서 파생한 연식 정구였으며 실제 테니스는 20여 년이 지난 후에 대회가 열렸습니다. 1927년 09월 2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용산의 철도국 코트에서 일본 오사카 매일신문사 경성지국 주최로 제1회 테니스 선수권 대회가 열렸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최초의 테니스 경기입니다.
2. 대한테니스협회 탄생과 발전
일제강점기에 테니스가 이어져 오다가 1942년 일제의 운동 금지 조치로 중단이 되었습니다. 테니스 코트도 태평양 전쟁에 미쳐있던 일제의 식량 증산을 위한다는 구실로 인해 감자나 호박 등 채소를 심는 것에 사용되었습니다. 광복과 더불어 1945년 10월 01일 조선테니스협회가 발족하였으며 이듬해 1946년 07월 25일 제1회 전국테니스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어 잃어버렸던 테니스 대회를 다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테니스가 중단되었지만 1953년 휴전 이후 테니스협회는 대한체육회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면서 테니스가 활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테니스협회는 대한테니스협회(The Korean Lawn Tennis Associate)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1960년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 출전하면서 대한민국 테니스도 국제무대에서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 시작하면서 국내에 테니스가 알려졌고, 1970년 이후에는 테니스 붐을 타고 점차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덕희 선수는 1970~80년대 국제무대에서 활약을 하면서 테니스의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는 양정순 선수와 함께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WTA 투어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출전했습니다. 계속 좋은 성적을 보여주던 이덕희 선수는 1982년 대한민국 테니스 선수로는 역대 최고 랭킹인 세계 랭킹 30위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 테니스가 발전하면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3. 대한민국 테니스 스타 탄생
이형택 선수가 나타나면서 대한민국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95년 프로에 전향한 이형택 선수는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2000년 US 오픈에서 16강 진출을 달성하면서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2000년대 이형택 선수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보여주면서 국내 테니스에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이형택 선수가 은퇴한 후 한동안 대한민국 테니스를 이끌어갈 선수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2010년대 중반 정현 선수가 나타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한 후 2018년 호주 오픈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4강 진출을 달성했습니다. 당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보여줬던 정현 선수가 메이저 대회 4강 진출을 하면서 더 좋은 성적까지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현 선수는 부상과 슬럼프를 이겨내지 못하고 현재는 이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현 선수 이후 권순우 선수가 등장해서 ATP 투어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기대를 하게 되었지만 아쉽게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테니스에 이름을 남긴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국내 테니스의 저변은 확대되었습니다. 테니스가 학교 스포츠로도 점점 더 많이 도입되고 있으며, 여러 대회들이 지역별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 다양한 테니스 아카데미와 클럽들이 설립되어 테니스 교육과 훈련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동호회 수요도 높아져서 취미로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테니스 저변 확대를 계기로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가 나오길 바랍니다.
결론 : 앞으로가 기대되는 대한민국 테니스
대한민국 테니스는 20세기 초반부터 조금씩 발전해 오다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형택 선수가 길을 터주고 정현 선수가 최고 성적을 거두면서 점차 발전을 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해서 대한민국 테니스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주길 바라겠습니다.